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는 방법.
안녕하세요. 케이트입니다.
오늘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현재까지 누적된 저의 결론 또는 데이터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최근 자주 생각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보게 되는 경향이 있어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좋겠다 싶기도 했구요.
사람의 특성을 빗댄 격언은 수 없이 많습니다.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집 내라 한다.
-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
- 방귀 뀐 놈이 성낸다.
- 빈 수레가 요란하다.
-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등등.
여러분은 '사람을 보는 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주 예전에는 그런게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도 하고 내 행동을 조심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섣부른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내 기준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걸러내는 필터로서 더 큰 갈등을 불러오기 전에 거리를 두고 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양자의 합의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내게 불편하다면 굳이 내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함께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내 일 아닌 일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음이 그 이유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거리감이 쿠션 역할을 하니 내가 또는 나의 행동이 당신에게 필요 이상의 갈등을 야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당신과 나는 친구가 아니니까.
그리고 더 체감하게 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진리와 같은 사실이 있다면, 그건 아래 문장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신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전시될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제 경험으로는 60% 이상은 알고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보인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보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보여주는 모습이 60% 이상라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상대방이 아무 액션이 없나요? 그건 아무것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사람을 깔보는 사람도, 과시하는 사람도, 권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다 하나같이 그 자질구레한 부수적인 행동들 역시 원해서 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이유없이 시비를 걸어도 되는 사람이야.
나는 사람을 깔봐도 되는 사람이야.
네가 뭐라고, 난 널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야.
나는 뭐 되니까 이 정도 과시는 해도 되는 사람이야.
나는 당신보다 권력이 있으니 당신을 찍어 내릴 힘 또는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하지 않아도 될 자리에 있는 사람이야.
나는 좀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사람이야. 등등.
상대에 피해준 게 없어도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 아 재밌다 느낌?
많은 사람들이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삼자대면을 하지 않고 어느 한쪽 말만 듣고 사실인양 떠드는 사람도, 더 들어보지도 않고 편만 드는 사람도, 그게 맞고 틀리다기 보단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함이고, 선입견 가득한 눈빛으로 이상한 소릴 한 바가지 하는 사람도 그 선입견이 진짜라고 믿어서 일수도 있겠으나 본인이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걸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 특성이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고용노동부에서 진정접수가 들어와 담당 조사관이 당신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기 자식 다쳤으니 선생님에게 매달 50만 원씩 송금하라고 한 그 부모도 생각할 겁니다. 자기는 그 어떤 문제도 없다고.
대체 세상이 왜 저리 난리지? 난 문제가 없는데? 그 선생님은 왜 자살을 한거지? 내가 뭘 했다고.
문제라는 걸 아는 사람이면 그럴수가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애를 쓰고 설명을 해도 모를 겁니다.
그 사람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의 저는 '사람 보는 눈'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기준을 과신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자기 기준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물론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확실하죠. 신의가 있는 사람, 인덕이 있는 사람,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관용이 있는 사람, 친절한 사람, 앞뒤가 같은 사람, 계산이 정확한 사람. 등등.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모두가 좋아할까요?
Q. 내가 지금 당신에게 사기가 치고 싶습니다. 당신의 철저한 경제관념과 당신의 청사진을 내가 좋아할까요?
Q. 내가 지금 당신의 노력을 후려치고 싶습니다. 당신이 성과를 위해 들이는 노력을 내가 좋아할까요?
세상 모든 것은 가치중립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각기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타인의 거절로 인해 속상해할 이유도 없고, 내가 거절을 주저할 이유도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저 가치관이 다르구나. 다른 세계관이 충동하는구나. 그런가 보다 하고 자기 할 일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당신이 대면하는 이 세상의 전 세계인을 모두 맞춰주고 살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빈정거림과 무례함, 또는 그 외 꼴갖잖은 만행들. 역시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무시하세요.
그냥 그 모습을 전시하고 과시하고 싶을 사람들과 엮여서는 더 피곤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피해가 있다면 문제를 제기해서 해결하면 됩니다. 혹시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해결되지 않음을 기록하세요.
미래의 당신을 지킬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당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험담하고, 거짓말하고, 뒤통수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AKA 통수꾼.
끊어내지 않는 선택을 당신은 정말 하실 건가요?
30년을 평범하게 가족을 지키며 성실하게 산 사람 vs 사기 전과가 30범 있는 사람.
당신은 정말 똑같은 태도로 대우할 자신이 있습니까?
그럼 여기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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