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그리고 어떤 말로도 부족한 나의 가족.
'가족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세상 사람 모두가 'YES'라고 대답할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보고 들은게 전부이던 시절.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모든 면을 사랑한다고는 안 했다. 하지만 사랑은 한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믿는다.
본가에 와서 방을 정리하며 나온 앨범 속 한 컷. 저 때가 언제였을까.
가운데 오빠가 있고 케이크 촛불이 7개 인 것을 봐 1990년? 91년 즈음일 것 같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저 사진을 보면 젊은 부모님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부모님은 두 분이 사시던 곳이 있었는데, 우리가 크면서 유치원도 보내고 초등학교도 보내야 해서 광주로 나오셨다고 들었다. 그렇게 융자를 끼고 큰 결심으로 이사를 한 부모님은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하셨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오빠를 졸졸 따라 다니며 어린이집도 다니고, 가끔은 오락실에 있는 오빠와 동생을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자전거 타는 법도 배우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다른 얘기지만 나는 주택을 지금도 싫어하는데, 진짜 나무 있고 잔디 있으면 벌레가 사시사철 장난 아니다. 여튼 그 주택엔 딸려있는 작은 주차장이 하나 있었는데, 주차장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소릴 들으면 잔소릴 하실까봐 세 어린이가 방에 들어가서 자는 척을 했던 때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약주를 드시는 날은 밤에 그냥 주무시면 좋으련만.. 자는 애들 깨워서 갑자기 어떻게 살 것인지 새해 계획 같은 걸 써오라고 하셨던, 지금 생각해도 세계관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주사. 이제 한글 배우는애들인데..;;;;;)
부모님은 이런 저런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 때도 있었고, 다 날릴 때도 있으셨지만 그건 부모님의 인생이니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다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식으로 살며 간접적으로나마 내게 많은 인상과 생각을 남기셨다.
그리고 그 때 돈에 대한 가치판단이 단단히 세워졌다.
돈이 없다고 갑자기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껴 쓰면 되고 벌면 된다. 다만 사람이 마음이 힘들어지면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생활이 팍팍하면 상처 주는 말들이 오고 가게 되어 있다. 그게 자본주의의 잔인한 측면이다.
그럼에도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나까지 셋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심지어는 아프지 말고 바르게 크라고 기도도 하신다.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나는 누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은 두분 다 은퇴 후 자유인의 라이프를 즐기고 계신다.
간혹 가면 붙어 앉아서 섭섭한 얘기를 한바가지 하시는데 지지 않고 말하는 스타일이라 갈등이 첨예하다.
- 아빠, 나 돈 없다. 오빠랑 동생이 더 많이 번다. 거기 가서 말해라.
- 이미 엄마 드려서 아빠 건 없다.
- 너는 엄마 편만 든다.
- 편든 적 없다. 등등.
생각해보면 효도라는 게 참 별게 없다. (별 건데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효도하겠단 쌉소리 하지 말고, 차려주신 밥 처먹기라도 잘해라. (탄수화물 어쩌고 지랄 떨지 말고)
옆에 계실 때 전화 자주 하고, 모시고 외식도 자주 나가고. 자주 들러 보는 게 효도라는 걸.
우리 시대의 부모님은 늘 자식을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걸.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나 자신아. 대체 언제 철 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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