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사원의 리뷰/도서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by KATE613 2021. 3. 16.
반응형

ROSE

그건 한 인간이 얼마나 쫀쫀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날 때부터 인간이 쫀쫀하게 생겨먹었다는 것, 그것보다 더한 천재지변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물론 인간에게는 예감이라는,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특별히 발달된 감정체계가 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미혼녀에서 유부녀로 바뀌는 건, 뭐랄까 호두를 깨무는 일과 비슷하다. 애당초 허기진 배를 채우겠다고 깨문 게 아니다. 왜 먹지 안고 놔두느냐는 주위의 채근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게 먹을 게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하지만 그 상태는 깊은 사랑이 아니라 깊은 착각에 가깝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한 타인이다. 우리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혼신의 힘을 바쳐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가 모르는 부분은 영영 남게 된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 뿐이다. 사람도 없는 막차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집까지 가는 동안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한없이 웃었던 기억, 아파트 근처 으슥한 벤치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말이 멈추고 어색한 마음에 둘이서 처음 입맞췄던 기억, 자존심 때문에 공연히 투정을 부리다가 되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 그만 혼자서 울어버린 기억, 사랑이 끝난 뒤 지도에 나오는 길과 지도에 나오지 않은 길과, 차가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지 않는 길과, 가로수가 드리워진 길과 어두운 하늘만 보이던 길을 하염없이 걸어다니던 기억. 모든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쇼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네. 그 사실이 얼마나 아쉬운 것인지, 그러면서도 그게 또 얼마나 마음 편하게 하는 것인지,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며 광수는 뼈아프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나 어른이 된다지만, 어른들은 자라나 무엇이 될까?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사랑 따위는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소주를 살 일도, 노래를 부를 일도, 춤을 출 일도 없을 텐데.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그런 까닭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질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위해서는 시기심이라는 단어가 준비돼 있다. 그런 점에서 어휘력에서 부족하면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사랑은 ‘나’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질투로 몸이 달아 자살을 떠올리는 심약한 청년이 되기도 하고 어떤 투정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너그러운 성자가 되기도 하고 청소차가 지나가는 새벽 거리를 비스듬히 누워서 바라보는 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존재다. 예컨대 1천 송이의 꽃이 있다고 치자. 한 송이 꽃은 1천 송이 중 하나의 꽃에 지나지 않지만, 그 한 송이 꽃이 없다면 999송이의 꽃은 존재할 지언정 1천 송이의 꽃은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 한 송이 꽃을 통해 1천 송이의 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해 자신도 1천 송이의 꽃이 되는 한 송이 꽃이라는 사실을 납득하는 일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사랑이 입을 열면,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만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즉 너무 알려고 하지 말아야만 한다. 너무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정체성마저 요구하는 일이다. 그건 무방비도시의 어둠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다. 현대적인 사랑의 방식이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그러므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랑가>를 부르며 바지 지퍼를 내리거나 브래지어 호크를 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어야만 상대방이 수많은 양반 자제 중에서 자신을 알아볼 게 아닌가? 그러므로 다시 한번,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냈다는 뜻이다. 사랑의 대상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모든 건 너한테 달린 문제야. 니가 알고 싶다면 내가 그때 선영이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하지만진실을 다 알고 난 뒤에는 니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게 될 거고 니가 책임져야만 하는 일도 생길 거야. 나는 세상만사의 진실을 샅샅이 알아낸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 그러나 니가 정 원한다면 말해줄 수 는 있어. 얘기해줄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까?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꽃에는 입술이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혀가 없지만 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내라고 종용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개인으로 자란다. 거울에 비친 그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항공우주국의 업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사랑은 우리의 평생교육기관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성인인증을 거쳐야만 입학할 수 있는 성인들의 학교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때까지 우리는 계속 낙제할 수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할 테니, 결국 우리가 그 학교에서 졸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반응형

댓글